가는길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강남역 한쪽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나 이사람 잘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일때 당시 부산지역뉴스에는 매일같이 나오곤했다.
'저사람 왜 매일나오는거야' 정도였지.(아마 해수부장관이었는듯. 부산항관련된 얘기도 많았다.)
난 9시30분이 되면 나오는 부산뉴스가 싫었다.
지방뉴스보단 재밌는 서울 공중파뉴스가 듣고싶었었는데 매일 똑같은 내용의 부산뉴스에는 왠지 매
일 저사람이 나왔다.
내가 대학생새내기일때 대선이 치뤄졌다.
난 투표권이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 대선에서 이분이 당선된것을 매우 좋아했다.
(누군가의 대통령당선으로 많은사람들이 술집에 몰려와 축하했던 일은 여태 본적이 없었다.)
아, 마치 2002년 월드컵때의 풍경처럼 모두 기뻐했던것 같다. 당선일도 2002 겨울이었다.
내가 이등병으로 막 자대배치를 받았을 무렵.
훈련소에서 관등성명을 익히며 대통령 노무현님. 이라는 칭호를 외치게 되었던 어느날.
점심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노무현 탄핵안이 국회에서 승인된것이 떠들석하게 방송되고있었고,
얼마후 치뤄진 부재자투표에서 난 내 생애첫 선거권을 열린우리당에 행사하게되었다.
아마 당시 우리부대원 거의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을 뽑았을것이라 추측된다.
'미친... 장난하냐? 어디서.. 대통령을 까?' 라는게 충성도높은 병사들의 심정이었으니깐.
제대를 하고 나오자,
그랬던 환호는 어디갔는지.
어디서건 노무현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지했던 세력이든 반대했던 세력이든 할것없이.
난 이사람이 그냥 좋았기 때문에,(풍기는 인상과, 어디서건 비춰지던 당당함,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
와 여태껏봐왔던 정치인과 달랐던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던 모습이)
뭔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비판이 조금 안타까웠었다.
우리나라의 냄비근성을 제대로 보여주는게 아닌지 라고.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
라는 댓글이 유행했고, 난 씁쓸한 미소를 지었었다.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려 들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정권에 혐오감을 보였다.
막바지엔 FTA도 문제가 되었다.
이때도 찬반 여부에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고,
우리국민이라면 할수있으니 한번해보자고 설득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FTA에서 살아남을수 있는지, 미국이 지네 손해보는걸 뻔히 안다면
왜할지 뭔가 의심스럽기는했다.
FTA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바쁘게, 그러나,
환희속에 시작되었던 정권은 너무도 초라하게 막을내렸고.
압도적인 지지속에 현정권이 탄생했다.(투표율이...)
사람들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저사람이 되면 진짜 경제가 살아날거라고 어리석게 믿었는지,
대학생중에도 2mb지지자가 많았다.
그들은 왜 지지해요라고 물으면..
'그냥 뭐 뽑을사람없고, 경제살린다고하니까'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난 뭐 그들을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경영을 뽑으라고 하겠는가.
뽑을만한 인물도 보이지 않았고, 한나라당의 당선은 확실해보였다.
당선후 개시된 계절학기 시간에 어느교수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기쁜일'이라 표현했고,
나는 저 교수에게 이렇게 묻고싶었지만, 당시 난 그런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기에는 너무 정신없었다.
'법을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탈법 세력이 정권을 잡았는데 기쁠수가 있죠.? 전 이렇게 흘러
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데요... 도둑이나 강도질해서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것입니까? 당신네들이 말하는 법의 이상인가요?'
어쨋건 노무현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향했고,
그곳엔 신기하게 관광객이 몰렸다. 사람들은 정권과 정치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을 했었고,
여전히 그를 못마땅해 하는이도 있는듯했지만,
친근한 그의 모습을 그냥그냥 좋아하는듯했다.
어느날, 노 전대통령의 부패혐의가 뉴스로 부상했다.
'아 표적수사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그리고,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기억할 이미지도 이제 더이상은 없지 않나 싶다.
그런데 말이야..
나 이아저씨, 아니 할아버지인가.
직접 본적도 없고, 대화한적도 없고, 먼 발치에서라도 본적이 없고,
내가 지지해서 뽑은 대통령도 아니고, 선거권도 없었고,
경력도 잘몰랐고,(이제서야 읽어본다.)
그저 티비에서 '국민과의 대화'라는 창구를 연것이 신기했고,
경상도 사투리가 정겨웠으며,
쌍꺼풀 수술이 귀엽게 느껴졌고,
봉하마을에서 여대생들과 키를 맞춰서 사진찍어 주려고 자신을 낮추던 모습들을
보아왔을뿐인데..
근데,
오늘,
막상 조문 행렬에 서서, 기다리는동안
누군가가 묵념을 마치고 담배에 불을붙여 영전에 고이 두는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차 오르는것을 막기가 너무 힘들었다.
영전사진의 고인이 너무 해맑게 웃고 계셔서,
국화를 놓는 순간에도 차마 사진을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묵념을 하는동안 속으로 되네이며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난 그 대신 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큰 쉼호흡을 몇번해야했어.
길게 늘어서 조문행렬중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많았고,
행렬엔 커플, 중년부부, 어린아이, 여고생.. 각양각색이었어.
무엇일까?
어쩌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아저씨의 죽음에
내가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게하는것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먼 친척의 분향소에서 보다 더 침통한 표정을 짓는이유가.
정말로 국민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같은 존재였던것일까.
난 그저 감사합니다. 이제 편히쉬세요. 이말을 전해드리려했는데.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