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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20:55 to pass the bridge

라디오 듣자.

학교에서 마침 디지털 라디오 발표했는데,

때맞춰 위젯이 나왔네요.
위젯, 라디오 플레이. 라디오 들어요.!


짱멋져.SBS라디오.

근데
오늘의 사연이
.영화찍네. 슬프당.

나도 맨날 기차타고 집에갔는데
옆자리엔 매번 할머니,할아버지만.

흑흑.
posted by art_engine

2009/05/27 23:46 more

악. 과제를 하려고 보니

교수님께서 모델을 *.txt 형식으로 주셨다.
분명 지난학기때 이걸로 애먹다가 잘해결하긴했지만,(해결책은 좀 허무ㅋ) 
또 기억이 안난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해서 준비한 txt파일 library로 변환하기

1.단계
주어진 *.txt 파일의 확장자를 *.lib로 변경
(만일 당신의 '내컴퓨터'가 확장자를 보여주지않는다면,
메뉴-도구-폴더옵션-보기-알려진파일형식확장자숨기기 체크해제 하시길)



2.단계_1단계하고나면 거의다 끝남.(그래서 허무ㅋㅋㅋ)
orcad의 model editor 실행



3.단계_ *.lib model editor에서 파일-오픈



4.단계_ model editor에서 파일- export to capture part library 클릭

5.단계_ capture CIS에서 파트 선택
ADD libray 선택하여 생성된 olb파일클릭하면된다.




6.단계_ 시뮬레이션하려면
시뮬레이션 library에도 추가해야한다;
여기서 Add to design을 선택하면 이 디자인에만 적용됨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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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ice txt파일로 주어진 모델이용하기  (1) 2009/05/27
posted by art_engine

2009/05/25 03:27 to pass the bridge
오늘을 잊지말자.
2009.05.25일 현재. 포털사이트모습.


1.다음




2.네이버




3.네이트




4.싸이월드



오늘의 표정.



그리고,
미처 몰랐던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 일화.

1.
옛날에 모호텔 일식당에 근무했을 때 국회의원 시절에 오셨었죠..
많은 정,재계인사들이 자주 식사를 하셨는데..주로 접대를 받으셨죠..
전부 항상 최고급회나 고급양주들을 드시니까 그 날도 주방은 최고급 횟감을 준비했고
저도 그러려니 하고 "무얼 드시겠습니까?"
그러니 "아가씨 죽 한 그릇만 주세여.." "네???" 기업대표가 " 아 왜 그럽니까.. 아가씨 젤 맛나고 비싼 걸로 줘"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었죠...." 아가씨 나는 얻어 먹는 건 너무 싫고 내 돈 주고 먹을라니까
호텔에서 죽 한 그릇 먹을 돈 밖에 없어.."그러고 매번 오실 때 마다 죽 한 그릇 드시고 계산도 따로 하셨죠...ㅠ
전 믿어요..그리고 존경합니다~

2.
저는 자이툰부대 출신자 입니다.
향수를 뿌리치고 멀고 먼 타지 이라크라는곳에서 7개월을보냈죠 해외 다녀오신분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3개월지나면 향수병에 걸리게 됩니다. 전 그랬습니다.
해외에 놀러간게 아니라 내 한목숨걸고 자랑스러운 태극기 어깨에붙여 나라에서 보내준 파병이었으니까요 근데 4개월쯔음 파병생활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리웠죠 근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저희 자이툰을 방뮨해주셨습니다. 많은 격려와 찬사를 쏟아주셨죠 그러던 와중 어떤 자이툰 장병한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노무현 대통령님께 '아버지!'라고 외치며 꽉 끌어안았습니다.
그래도 일개나라의 대통령입니다 군인신분으로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자리입니다.
경호원들도 어쩔줄 몰라했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손짓한번으로 재빠르게 다가오는 경호원들을 막으시고 그 장병을 꽉 껴안아주시며 '그래 아들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군들이 울기시작합니다. 감동으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전 그때를 그순간을 잊을수가없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존경합니다

3.
 한소녀가 장난반 진심반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친필싸인을 얻기위해 메일을 보냈고,
아무런 답이 없어 포기할 무렵..
4.
2002년 5월 24일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한 토론회에서
‘옥탑방’의 의미를 몰라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 다음날 라디오에 출연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같은 질문을 받고는 “저도 몰랐다”고 답해버린다.
전날 이미 나온 문제였기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희정씨 등 측근들도 “왜 그렇게 답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노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어제 이회창 후보 토론회를 건호(아들)와 같이 봤다. 그때 내가 옥탑방의 뜻을 몰랐다는 걸 건호가 아는데, 어떻게 알았다고 대답하느냐.”

5.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6월 대선 후보이던 당시 김수환 추기경을 찾은 자리에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프로필 쓸 때 종교란에 무교로 쓴다”고 말했다.

이에 김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노 후보는 “희미하게 믿는다”고 답했다.
김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재차 묻자, 노 후보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앞으로 프로필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노 후보의 이 대답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다.
종교 표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일반 정치인들과 달리 노 후보는 천주교인이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송기인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경위도 눈길을 끈다. 송 신부의 얘기에 따르면 1986년 부산 미 문화원 사건 때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는데, 변론이 끝나면 신부와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등장인물을 다 외워 송 신부가 깜짝 놀라자 노 전 대통령이
‘이런 머리를 가지고 대학 문도 밟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송 신부는 ‘성당은 열려 있다. 성당에서 공부하라’고 노 전 대통령에게 권유했고,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성당 교리반에 입교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부부는 1년을 다녀야 하는 과정에서 딱 4시간만 출석했고 결국 심사에서 낙제했다. 송 신부는 남천성당 정명조 신부(후에 주교가 됨. 2007년 선종)에게 “낙제생이 있으니 교리 교육을 시켜서 세례를 주시라”고 부탁했고 이에 정 신부는 “먼저 세례를 줘서 보내라, 그러면 제가 교리 교육을 시키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세례를 줬다. 노 전 대통령 내외는 남촌성당으로 옮겨 정 신부와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게 정 신부가 노 전 대통령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송 신부는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내가 성당에 나오지도 않을 사람에게 세례를 준 셈이 됐다”면서 성당에 나오라고 권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신부님이 제게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성당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6.
나는 대전에서 사는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우연히 노무현님의 초임 법관시절 얘기를 듣고 콧등이 시큰해 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을 가까이서 같이 근무한 법원 직원(지금은 퇴직한)이 전한 말입니다.

노무현님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젊은 나이에 처음 근무한 곳이 대전 지방법원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군대가고 군대제대하면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예비군을 마치면 민방위로 편성되어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요....

당시 노무현님은 예비군이었답니다

당시 법원직원의 말씀,
" 법관으로써 한번도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은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훈련을 받아야죠. 그러나, 당시 빽있고 힘있다는 사람들의 권세를 상상할때 이는 실로 신선한 충격을 넘어 법원 직원들이 인정한대로 대단한 분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군요.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말
"그는 아무리 하위 직원이라도 함부로 대한적이 없었으며 권위를 부리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대하여 준 누구나 존경받는 법관이었다."

7.
전 86-88년 까지 군생활을 부산에서 했습니다. 그것도 악명높은 백골단이었었죠.
남포동 부영극장으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우리부대는 워낙 인기(?)가 높아 부산시 전역을 커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러운 인기였지요 그만큼 진압이 힘들었으니까요.

그날 우리에게 내려진 특명은 지도부 체포였습니다.
예의 진압방식대로 우린 깊숙히 침투했고 최루탄 소리와 동시에 지도부를 잡았습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가 남포동 하늘을 감싸고 비명이 메아리친다음 우린 습관처럼 전리품들을 차에 실으려 했습니다.

그때 사라진 최루탄 연기사이로 어떤 사람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채로 그이는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노무현이다 나를 잡아가라 노동자가 저 힘없는 저 양반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를 잡아가라 ....'
우는게 아니라 울부짖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되어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전 노무현님을 만났습니다.
 
중대장은 그러더라구요요.
'저 새끼는 잡지마라 독종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는 허삼수니 하는 사람이 중심인 사회였던걸로 기억 합니다.

8.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까 완전히 달마시안 같더군여.. 그래서 자주가는 세차장에 세차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저보구 "대선 누구뽑을꺼냐??" 하시더군여..

바로 당연히 노무현이죠..할려다가 무슨얘기하나 들어볼려구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구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내가 옛날얘기 하나 해줄께..하시더군여..그러니까 사장님
나이가 한 35세~ 40세 추정되는데 정확히는 잘모릅니다.

젤 처음하는 말이.."난 노무현한테 죄를 진사람이야.."하데요..
깜짝놀래서 그게 무슨얘기냐고 물었더니 아저씨왈

"내가 군생활을 의경으로 했는데 자대가 경남 마산에 기동대로 떨어진거야..
매일같이 닭장차(의경들타는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시위 막으러 가는데 하루하루 참 힘들고
그때는 시위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젤 나쁜놈들이라고 생각했지.. 왜냐면 내 몸이 힘드니까..

하루는 울산인가..그곳에서 데모한데길래 또 버스를 타고 거길 간거야..
다들 내려서 대열정비하고 서있는데 누가 마이크잡고 큰 소리로 막 소리치는거야..
그래서 우리부대 전체가 그사람얘기하는 걸 들었지..

그 사람 입속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에 다가오던지..
말속에 진실이 묻어나왔어..진짜 그사람 피눈물 흘리는거 같더라구..
우리는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한참을 그곳에 침묵하고 있었어
.. 대원들끼리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드라구..

저사람이 누구냐..저사람 말이 다 맞는거 아니냐.. 저사람 좀 멋있다....
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어..난 그때 쫄병이라 조용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저런 사람도 대한민국에 있구나..그런생각을 했지.

그러던중에 시위가 거세지고 한번 붙었는데 우리가 개스를 쐈어.. 그사람 있는쪽이었지..근데 그사람 그 독한가스 마시면서도 얘기를 계속하는거야..다른 사람은 개스피해서 뛰는데 그 사람은 그곳에서 개스에 목이메어도 계속 소리를 지르는거야..
우리는 다 뭐 저런사람이 다 있냐고 그랬지..

그날 밤에 내무반에 왔는데 모두 그사람 얘기하더라구 오늘 그사람이 누구냐? 노조간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부산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들 얘기하고 개스 쏘고나서 미안해서 혼났다고도 하고 바보같이 피해야지 거서 마이크 잡고있는놈이 어딨냐고도 하고 온통 그사람 얘기였어..

그후로 몇번을 봤는데 그사람은 똑같애..하나도 안틀리고 매번 똑같더라구..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좀 했지..

제대하고 나서 하루는 집에서 티비를 보는데 많이 본사람이 있는거야..
국회의원이라고 하데.. 하는데 내가 국회의원중에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싶어서 잘못봤나..
했는데 유심히 보니까 우리가 깨스쏠때 서있던
바보라고 생각한 그사람인거야~~난 깜짝놀래서 있는데 이름이 노무현 이라고 나오더라구..

아..노무현이구나..그때 그사람이 노무현이구나..

근데 그사람 티비에 나올때마다 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거야..
우리가 쏜 깨스 그사람이 다 마셨잖냐..그래서 손님들 오면 지금 이 얘기 해주면서 노무현 한표 부탁한다고 선거운동하지..

나한테는 최소한 그사람한테 진 빚 갚는 유일한 방법이잖냐....


9.

노무현과 '와이키키 부러더스'      

요즘 '와이키키 부러더스'라는 영화가 화제다. (2001년 당시의 글입니다.)
죽었다 살아 난 영화라던가. 네티즌 덕분에 이 영화도 살아 났다는 것이다.

오늘 토요일 5시.
여자 친구와 스카라 극장을 찾았다. 아직 상영시간이 안되어 밖에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어! 나는 깜짝 놀랐다.

노무현이 극장문을 들어서는 게 아닌가. 딸인듯 한 20대 아가씨와 둘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웃으며 벽에 붙어있는 좌석번호를 확인한다.

노무현은 내 앞 좌석이다. 잠시 귀를 기우려 들으니 둘은 부녀 사이다.
어쩐지 얼굴이 비슷하더라니.

딸이 음료수를 사다 노무현에게 준다. 영화 상영되는 동안 자꾸만 노무현에게 신경이 간다. 영화가 끝나고 둘이 거리로 나섰다. 나도 여자 친구와 나왔다. 길가던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인사를 한다.  어떤 청년은 싸인을 청한다. 나도 싸인이나 받을까.

노무현이 딸과 무엇인가 잠시 의논 하더니 바로 길 건너 낙지집으로 들어 간다. 따라 들어가서 얘기나 해 볼까. 아니지. 모처럼 딸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방해를 해서는 안되지.

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노무현이 참 멋지지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동의 했다.
이름 좀 알려진 정치인이 행차를 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닌다.
얼마 전 이회창 총재가 극장에 갔는데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더군.

영화를 보러 간건지 선전을 하러 간건지.

오늘 저녁.
노무현은 참 보기 좋더라.  영화도 좋았고..

10.

90년 1월 30일, 그렇게 민주를 외치던 세력들이 독재군사정권(민정당)과 3당 합당하는 전 날...

 

김영삼 총재의 '해체에 이의 없습니까?'라고 묻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이의 없습니다!!'라고 연호할 때...
노무현님이 홀로이 '이의 있습니다!!!' 말하며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합니다.


사회를 보던 김영삼은 노무현님을 애써 못 본 척 하며 '그럼 이의가 없는 것으로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노무현님이 크게 외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전 반대합니다!!!!!!!!!!!!!!!!!!!!!!!!!!!!!!'


그러나 통일 민주당은 해체가 되고 김영삼은 대통령이 됩니다.

90년 3당 합당 때 여당에 따라갔다면 국회의원이야 세 번, 네 번 하고,

장관도 일찍 하고 도지사 시장도 한번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잘못된 정치풍토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의 큰 자부심이고 행복입니다


당시 정치적 스승인 김영삼을 따라 여권에 갔다면 탄탄대로의 정치적 성공을 뒤따랐을 것입니다.

그 후로 노무현은 그의 말대로 국회의원 선거에 몇 번이라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부산시장선거에도 떨어졌습니다.

김영삼이라는 지역보스가 버틴 곳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통령의 권위에 맞는 곱고 세련된 언어에 익숙하지 못하고 어눌하고 투박한 말과 언동으로 욕먹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혼을 팔지 않았습니다.

바보가 되어 욕먹을지언정 영혼을 팔지 않았습니다. 

 

11.
원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총출동한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녹화에서 김동완이 “쭌이형(박준형)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며 “당시 서세원에게 어깨동무를 하던 유일한 연예인이었다.”고 말하자 손호영은 “쭌이형(박준형)은 대통령과도 그렇게 행동했다” 고 폭로했다.

god 시절 청와대에 공연을 갔을 때 노무현 전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있었는데 박준형이 악수를 하다가 마치 친구처럼 대통령을 끌어안았다는 것. 손호영은 “뒤에서 보던 우리도 화들짝 놀랐는데, 노 전 대통령님이 멈칫 놀라시더니 이내 미소로 화답하셨다”고 덧붙였다.

12.
1998년 제13대 국회의원 시절, 5공 비리 국회 청문회.

 "7월 25일까지만해도 8천만원을 주니 못주니 싸우다가,

며칠 지나니까 2천만원 더 올라갔는데 아마 다부지게 누가 달려들었던 모양입니다.

돈 10억, 5년동안에 말입니다. 34억 5천만원.

 그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에는 5년동안 34억5천만원이라는 돈을 낼름낼름 갖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고 일하다가 죽었던 이 노동자에 대해서 4천만원 주느냐 8천만원 주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게 인도적입니까. 그게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과 오늘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art_engine

2009/05/24 20:38 to pass the bridge




가는길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강남역 한쪽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나 이사람 잘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일때 당시 부산지역뉴스에는 매일같이 나오곤했다.

 '저사람 왜 매일나오는거야' 정도였지.(아마 해수부장관이었는듯. 부산항관련된 얘기도 많았다.)

 난 9시30분이 되면 나오는 부산뉴스가 싫었다.

 지방뉴스보단 재밌는 서울 공중파뉴스가 듣고싶었었는데 매일 똑같은 내용의 부산뉴스에는 왠지 매 

 일 저사람이 나왔다.

 

 

 내가 대학생새내기일때 대선이 치뤄졌다.

 난 투표권이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 대선에서 이분이 당선된것을 매우 좋아했다.

 (누군가의 대통령당선으로 많은사람들이 술집에 몰려와 축하했던 일은 여태 본적이 없었다.)

 아, 마치 2002년 월드컵때의 풍경처럼 모두 기뻐했던것 같다. 당선일도 2002 겨울이었다.

 

 

 내가 이등병으로 막 자대배치를 받았을 무렵.

 훈련소에서 관등성명을 익히며 대통령 노무현님. 이라는 칭호를 외치게 되었던 어느날.

 점심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노무현 탄핵안이 국회에서 승인된것이 떠들석하게 방송되고있었고,

 

 얼마후 치뤄진 부재자투표에서 난 내 생애첫 선거권을 열린우리당에 행사하게되었다.

 아마 당시 우리부대원 거의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을 뽑았을것이라 추측된다.

 '미친... 장난하냐? 어디서.. 대통령을 까?' 라는게 충성도높은 병사들의 심정이었으니깐.

 

 제대를 하고 나오자,

 그랬던 환호는 어디갔는지.

 어디서건 노무현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지했던 세력이든 반대했던 세력이든 할것없이.

 

 난 이사람이 그냥 좋았기 때문에,(풍기는 인상과, 어디서건 비춰지던 당당함,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 

 와 여태껏봐왔던 정치인과 달랐던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던 모습이)

 

 뭔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비판이 조금 안타까웠었다.

 우리나라의 냄비근성을 제대로 보여주는게 아닌지 라고.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

 라는 댓글이 유행했고, 난 씁쓸한 미소를 지었었다.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려 들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정권에 혐오감을 보였다.  

 

 막바지엔 FTA도 문제가 되었다.

 이때도 찬반 여부에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고,

 우리국민이라면 할수있으니 한번해보자고 설득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FTA에서 살아남을수 있는지, 미국이 지네 손해보는걸 뻔히 안다면

 왜할지 뭔가 의심스럽기는했다. 

 

 FTA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바쁘게, 그러나,

 환희속에 시작되었던 정권은 너무도 초라하게 막을내렸고.

 

 압도적인 지지속에 현정권이 탄생했다.(투표율이...)

 사람들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저사람이 되면 진짜 경제가 살아날거라고 어리석게 믿었는지,

 대학생중에도 2mb지지자가 많았다.

 그들은 왜 지지해요라고 물으면..

 '그냥 뭐 뽑을사람없고, 경제살린다고하니까'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난 뭐 그들을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경영을 뽑으라고 하겠는가.

 뽑을만한 인물도 보이지 않았고, 한나라당의 당선은 확실해보였다.

 

 

 당선후 개시된 계절학기 시간에 어느교수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기쁜일'이라 표현했고,

 나는 저 교수에게 이렇게 묻고싶었지만, 당시 난 그런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기에는 너무 정신없었다.

 

 '법을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탈법 세력이 정권을 잡았는데 기쁠수가 있죠.? 전 이렇게 흘러

 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데요... 도둑이나 강도질해서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것입니까? 당신네들이 말하는 법의 이상인가요?'

 

 

 

 어쨋건 노무현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향했고,

 그곳엔 신기하게 관광객이 몰렸다. 사람들은 정권과 정치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을 했었고,

 여전히 그를 못마땅해 하는이도 있는듯했지만,

 친근한 그의 모습을 그냥그냥 좋아하는듯했다.

 

 

 어느날, 노 전대통령의 부패혐의가 뉴스로 부상했다.

 '아 표적수사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그리고,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기억할 이미지도 이제 더이상은 없지 않나 싶다.  

 

 

 그런데 말이야..

 나 이아저씨, 아니 할아버지인가.

 직접 본적도 없고, 대화한적도 없고, 먼 발치에서라도 본적이 없고,

 내가 지지해서 뽑은 대통령도 아니고, 선거권도 없었고,

 경력도 잘몰랐고,(이제서야 읽어본다.) 

 그저 티비에서 '국민과의 대화'라는 창구를 연것이 신기했고,

 경상도 사투리가 정겨웠으며,

 쌍꺼풀 수술이 귀엽게 느껴졌고,

 봉하마을에서 여대생들과 키를 맞춰서 사진찍어 주려고 자신을 낮추던 모습들을

 보아왔을뿐인데..

 

 

 근데,

 오늘,

 막상 조문 행렬에 서서, 기다리는동안

 누군가가 묵념을 마치고 담배에 불을붙여 영전에 고이 두는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차 오르는것을 막기가 너무 힘들었다.

 

 영전사진의 고인이 너무 해맑게 웃고 계셔서,

 국화를 놓는 순간에도 차마 사진을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묵념을 하는동안 속으로 되네이며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난 그 대신 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큰 쉼호흡을 몇번해야했어.

 

 길게 늘어서 조문행렬중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많았고,

 행렬엔 커플, 중년부부, 어린아이, 여고생.. 각양각색이었어.

  

 

 

 무엇일까?

 

 어쩌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아저씨의 죽음에

 내가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게하는것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먼 친척의 분향소에서 보다 더 침통한 표정을 짓는이유가.

 

 

 

 정말로 국민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같은 존재였던것일까.

 

 

 

 난 그저 감사합니다. 이제 편히쉬세요. 이말을 전해드리려했는데.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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